팩키지 여행이라 앙코르 와트를 1시간 만에 끝내고 둘째날은 쇼핑 센터만 방문하는 바람에
출발하는 날 새벽 5시 넘어 혼자 앙코르 와트로 향했다.
연못 앞에는 일출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고
삼각대를 준비하지 못한 나는 대략 사진을 찍고 앙코르 와트로 들어갔다.











앙코르 와트 내부를 한번 둘러보고 나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나란히 앉아서 해가 앙코르 와트에 걸려 있는 광경을 보고 있다.
서양 노인들이 이렇게 나이들어서도 몇몇이서 여행다니는 모습, 참 보기 좋다.









이 압살라는 보는 순간, 한참이나 눈을 돌리지 못했다.
조각과 사랑에 빠지는 게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선한 듯하면서도 슬픈 그녀의 표정
가슴 부분이 훼손된게 마음 아팠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씨엠립 시내를 어슬렁 거리다가 시장에 들어섰다.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왠지 관광지에서 만나는 사람들만큼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동남아에서는 (우리가 보기엔) 덜익은 망고에 양념을 해서 야채처럼 먹기도 한다.
달지는 않는데, 먹다보면 은근히 맛있기도 하다.




코코넛, 근데 코코넛이 바로 야자열매인 걸 알면서도 조금 헷갈린다.
과즙은 생각보다 달지는 않고 안쪽 표면에 있는 흰 부분이 쫄깃쫄깃하게 맛있었다.







톤레삽 호수로 왔다.
아이들 표정이 왠지 여유롭다.




톤레샵호수에서는 다일공동체가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제 외국나가서 관광만 하는 게 아니라 봉사를 하는 시대로 들어섰음을 실감했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그러고 보면 마을에서와는 달리, 앙코르 와트 유적지에서의 캄보디아 사람들 표정은
회색빛 석상처럼 건조해 보였던 것 같다.
반복되는 유적지에서의 일상에 지친 캄보디아 사람들의 표정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도시인의 표정과도 닮아 있었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캄보디아에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건 물질만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저 세 꼬마들, 카메라 든 사람들한테 사진 찍으라고 하고 나서는 다이빙을 하더군요.

 

사진 찍고 나서 1달러, 1달러 하는 걸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니,

 

약간 실망한 듯 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못하던 아이들...

 

 

그냥 1 달러 줄 걸 그랬나..하는 아쉬움이 뒤늦게 듭니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이번 구정 때 베트남, 캄보디아에 가기로 했다.
혼자라서 못하는 것도 많은데, 혼자라서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살기에는
조금 억울한 것 같아서 이번에 욕심을 부린 셈이고

박사시작하고 주경야독하느라 바쁘고 
남들 다 쉬는 방학때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나라면 '
이 정도는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그리고 베트남에 가보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게 2004년이니
6년동안 미루어왔으면 이제는 갈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들고...

굳이 베트남까지 들르기 위해 베트남항공을 택했다.
밑에 가는 날, 오는 날 일정을 보면 알겠지만, 완전 배낭여행 일정 수준이다.

올해는 이집트에도 가봤으면 좋겠다.

이번 여행에서 좋은 사진들을 많이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010년 02월 16일 (화요일)

인천                    07:30                    * 인천공항 3층 출국장 A카운터 옆(1 GATE) 15번 테이블

                          10:15                    VN939  * 인천 국제 공항 출발

                                                     

호치민                 13:50                    * 호치민 국제공항 도착 후 트랜짓 이동

                          16:30                    VN829  * 호치민 국제공항 출발 / 씨엠립 향발

                                                     

씨엠립                 17:30                    * 씨엠립 국제 공항 도착

                                                    <씨엠립 국제공항 도착 후 가이드와 미팅>

                                                    입국 수속을 마치신후 공항 밖으로 완전히 나오셔야만

                                                    "SK TOURVIS" 피켓 을 들고 있는 한국인 현지 가이드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가이드는 공항출입이 불가 합니다)

                                                    여권과 리턴티켓은 잘 보관하세요

                                                    (한국으로 돌아오셔야 하는 가장 중요한 서류 입니다)

                                                    전용차량  호텔 체크인 후 호텔 투숙 및 휴식

                                                     

◎ 명칭 : 드래곤 로얄 호텔(Dragon Royal Hotel)

◎ 주소 : National Road No.6 , Siem Reap, Kingdom of Cambodia

◎ 교통 : 공항에서 15분거리, 시내중심에서 5분거리 위치

◎ 부대시설 : 수영장.레스토랑..비즈니스센터.헬스클럽.마사지 서비스등

◎ 홈페이지 : www.hoteldragonroyal.com

◎ 개장일 : 2007 11.

◎ 객실수 : 153 / 특급(★★★★)

◎ 호텔 소개

    캄보디아 6번 도로변에 위치한 호텔 드래곤 로얄은 앙코르 왓이 있는

    씨엠립 주의 중심부에서 차량으로 3분 거리에 있으며, 씨엠립 국제공항

    과는 가장 가까운 호텔중의 한곳입니다. 시내와 앙코르 왓 유적지로의

    이동시 용이한 편이며, 수영장과 헬스클럽 레스토랑 회의장 등의 부대

    시설을 골고루 갖춘 고급형 호텔입니다

중식 : 기내식  석식 : 한 식 

 




2010년 02월 19일 (금요일)

기내박   

씨엡립                                          전용차량  * 호텔 조식 / 가이드 미팅 후 공항으로 이동

                           10:30                      VN9881  * 씨엠립 국제공항 출발 / 호치민 향발

                                                     

호치민                 11:50                    * 호치민 국제공항 도착 후 가이드 미팅

                                                    구찌 이동( 1시간 30분 소요) 도착 후 늦은 중식

- 월남전 지하 월맹 사령부인 구찌 터널 관광

- 전쟁 시 기록영화 감상, 전투식량 시식

- 땅굴 지하 요새인 부비트랩 및 터널 체험 후 호치민으로 귀환

  

                                                    석식 후 간단한 쇼핑 관광

                          23:50                      VN938  * 호치민 탄손누트 국제공항 출발

 

 

 조식 : 호텔식  중식 : 기내식  석식 : 쌀국수 

 

2010년 02월 20일 (토요일)

인천                    06:10                    * 인천 국제공항 도착후 해산

                                                    null

                                                    SK TOURVIS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조식 : 기내식 

 


 


Posted by 오래된未來
보타산에 갈려다가 너무 멀고 또 가봤자 별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시내를 느긋하게 걷기로 했다.
성당을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드나들기에 가보니 미사를 하고 있다.
아, 오늘이 일요일이었지...
중국신부님이 외국사람들을 위해 영어로 성경을 읽고 있는 걸 들으니 왠지 더 성당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인성당에서 내가 받은 느낌은 한국어로 번역된 외국책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나?

작년 7월인가 세례를 받고 나서는 성당을 가지 않았다.
문득 성당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내를 거닐다 거닐다, 성황묘 부근에 있는 먹자시장을 발견했다.
굴 하나에 7위안, 작은 전복도 7위안


내가 사진을 찍으니 굴파는 아저씨가 나보고 기자냐며 내가 사무실을 열면 내 밑에서 일을 하겠단다.
이 분 왠지 홍콩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저 집에서 굴 하나, 전복 3개, 10위안짜리 새우 한 마리를 먹었다.
내가 닝보에 살면 일주일마다 한 번은 갈 집이다, 아쉽다...


10위안짜리 새우, 바싹바싹한 게 맛있었다.


秋刀魚(꽁치)
한 마리에 7위안, 보는 순간 이 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먹는 걸 보는 사람들도 고개를 돌려 한번 더 쳐다보더라.


한 마리 더 먹을 걸, 쩝~


구운 만두를 팔던 아주머니
왠지 인상이 정겨웠다.


옆에서 사진찍는 걸 보고 자신도 찍어달라던 아주머니
사진찍고 쑥쓰러운 듯 다시 일을 시작하시는 바람에 사진도 못 보여드렸다...


시장을 나와서 걷다가 걷다가
이 장면을 보는 순간
'아하!' 나는 사실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요즘 나는 외롭고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가족도 없이 혼자지, 외국에서 7년째 살고 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나는 저 분처럼 한 곳에서 정주하는, 3년 뒤, 5년 뒤가 지금과 똑같은 상태인 삶을 살 수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혼자라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가 있었고
외국에서 7년째 살고 있길래
지금의 나는 2000년을 맞이했던 내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사고와 지식의 지평을 넓혔다.
(그러고보면 나는 이전에 감성적인 측면만 아니라 지성적인 측면에서도 꽤 편협한 인간이었다)
(게다가 98년인가 영풍문고에서 영어원서들을 보면서 10년 뒤에는 저런 걸 자유롭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문득 생각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로도 별 불편함 없이 책을 읽을 수가 있게 되었다)

신년 여행을 통해서, 내 삶의 방향을 깨달은 것 같다.
영향을 주는 삶,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당대 한국인은
부모로부터 한국 최대의 회사를 물려받는 사람도 아니고
여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장동건, 정우성도 아닌
바로 한비야이다.
물질적인 것 없이도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구나...

그녀가 그렇듯이, 나도 나를 찾아서 끝까지 한번 가보자.
 

한비야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자기가 바른 길로 들어섰단 확신만 있다면

남들이 뛰어가든, 날아가든

한발 한발 앞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이에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시작한 일을 끝까지 했느냐 인 것이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채원배, 노신, 주은래가 태어난 곳이
불과 2~3km 반경안에 있다는 건 지나친 우연일까?

북경대학 교정에서 채원배의 동상을 봤었는데, 상해교통대학에도 원배로라는 길이 있는 걸 보고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길래 이런 영예를 누리고 있는 지 궁금해 하다가
마침 샤오싱에 채원배 옛집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곳으로 향했다.

전시관에 있는 자료들을 보고서야 십 몇년 전 중국 현대문학사 과목에서 들었던 채원배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났다. 채원배는 1916년부터 북경대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능력우선주의로 인재를 채용하여 사상의 백화쟁명을 이루어냈다. 이 당시 노신도 북경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처음엔 조금 이상하지만, 보면 볼수록 의미있게 느껴지는 북경대학 휘장
노신이 디자인했다고 적혀 있다.


1919년 5.4운동 후 잡혀간 학생들을 석방하기 위해 정부당국과 교섭하고 있는 채원배
그러고보면 북경대학, 고려대학 모두 각 국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학들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샤오싱은 중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노신, 채원배를 배출하는 행운을 누린 곳으로 나에게 기억될 듯 싶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소흥, 맛있는 먹거리도 많고
의외로 미녀도 많은 곳이었다.
드디어 노신을 만나러 왔다.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다음에 소흥에 가면 꼭 배를 타봐야겠다


노신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수많은 재산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름조차 남지 않았지만,
가난하게, 힘들게 살았던 노신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다.

소흥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얻었다.




노신이 다녔다는 삼미서옥




노신...




소흥에서 도시의 일부분이 아예 노신을 위주로 꾸며진 것을 보고 놀랐다.
이렇게 한 특정인물을 위주로 테마타운이 만들어진 도시는 흔치 않을 것이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저번 주 목요일, 그러니까 12월31일 저녁 6시, 도저히 3일동안 할 일이 생각나지 않아서,
새해부터 도서관에 가서 공부한답시고 궁상 떨기도 싫고
그렇다고 집에 혼자 있기도 싫고
결국은 기차표 파는 곳에서 1일 오후 2시25분 샤오싱으로 떠나는 기차표를 사버렸다.

그리고 31일 밤은 아는 사람들에게 메일 보내고 여행 준비하고 그렇게 일부러 바쁘게 보냈다.


1일 오후 샤오싱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부산공원에 갔지만, 와신상담 중 '상담'의 이야기를 남긴
월왕 구천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월왕대는 수리중...
저녁내내 샤오싱 거리를 걷다가 첫 날은 휴식

다음날 오전 9시에 부랴부랴(시간이 넉넉치 않은 관계로 계속 부랴부랴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택시를 타고 란팅에 갔다.


마침 원단 연휴라 개울에 황주를 띄우고 시를 읊던 전통을 재현하고 있었다.


연못에 남아 있던 연꽃의 흔적


반영을 통해 바라본 정자의 모습


이 곳은 왕희지의 숨결이 서린 곳이다.


수없이 찍힌 낙관을 보면서 새삼스레 중국문화는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중국을 앞서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의 약 30년 동안 말고는 없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과 거의 중복되는 기간이다.




300년 전에 강희제는 중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기의 흔적을 남겼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 남자와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건륭제 역시 비석 뒷면에 할아버지인 강희제를 따라 글을 남겼다.


왕희지가 아들이 쓴 클 대(大)자가 맘에 들지 않아 점을 하나 찍었다고 한다.






샤오싱 곳곳에서 부채에 글을 써주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분은 돌에다가 글자를 새겨준다.
오랜만에 접하는 중국의 이전 모습이다...



Posted by 오래된未來
비래봉석굴을 거쳐서 영은사에 도착했다.
사실, 35원의 입장표가 영은사까지 포함하는 줄 알고 있다가 영은사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시 30원을 내고 입장표를 사야하기에 영은사를 지나쳐 영복사에까지 갔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그래도 이곳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영은사에 들어갔다. 영은사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과 큰 불상들이 있었지만, 산 구석구석에 건물들이 위치해있는 영복사만큼 유유자적한 맛이 있지는 않았다.


대웅보전의 모습


새해라 더 그렇겠지만, 영은사는 온통 소원을 기원하기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아가씨는 무슨 소원을 빌고 있었을까?


큰 향로에 동전을 던져넣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열심히 새해 소원을 비는 사람들


중국에서 가장 큰 목조불상이라는, 높이가 24.8m에 달하는 목조 석가모니 좌불상과 대웅보전을 나가는 쪽에 있는 불상


향을 피우기 위해 불을 붙이는 사람들


불상을 보수하고 있는 모습
중국에는 대중의 구원과 영원을 추구하는 불교는 없고 불상과 기복신앙만이 있는 듯 하다.
불상이 크다는 건 마음으로 믿지않고 눈으로만 믿으려 하는 대중들이 많다는 반증이 아닌가...


시간이 부족해서 서호유람선을 타지 못하고 대신 청하방을 보기 위해 왔다.


거리는 온통 새해를 맞아서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래봉석굴에서도 비슷한 조각을 보고 대체 누구인가 궁금했었는데, 여기에도 길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다. 알고보니 이 분은 영은사에 있던 제공스님으로 출가 후에도 계율을 지키지 않고 술, 고기를 맘대로 하고 기행을 즐겨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친 스님으로 불렸으나, 마을에 어려운 일이 닥치고 해결해주고 악한 자를 혼내고 선한 자를 도와주는 등 선행을 많이 해서 나중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던 스님이라고 한다.


설탕과자, 옆에서는 뽑기까지 할 수 있다.



























의상을 빌려서 꽃 단장을 하고 가마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골목 한 중앙을 조각과 가마로 장식했다.

























태극다도 차관, 깨로 만든 간식거리들도 팔길래 한번 먹어볼려고 하다가 같이 간 선배님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패스. 맛있어보였는데, 그래도 한번 먹어볼걸...


용수염처럼 생긴 간식거리를 만드는 모습


글자 새긴 호박 그리고 용정차 만드는 모습, 2량(100그램)을 20원에 샀다.


길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회춘당. 건물이 심상치 않아서 들어가보니 유서가 상당히 깊은 약국이며 지금도 진찰을 하고 약을 지어주고 있었다.























약국안 모습, 약을 사가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산삼과 영지


오래된 동전 및 지폐 등을 파는 곳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나오면서 보니 항주세계화폐박물관이다.


결국 정화통보라는 동전 한 쌍을 40원에서 깍아서 30원에 샀다.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동전을 가지고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동전을 파는 할아버지도 왠지 이 업종에 대해 연륜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당나라 동전은 얼마냐고 물으니 10원밖에 안한다고 해서 왜 더 오래된 당나라 동전이 송나라 동전보다 싼지 이유를 물어보니, 발굴된 당나라 동전이 더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정화통보는 글씨체가 두 종류인 동전을 한 쌍으로 파는데, 송나라때에는 화폐 주조에도 예술적인 면을 고려하여 두 가지 서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송 휘종을 보더라도 송나라 황제들은 딜레탕트한 기질이 있었던 듯 하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정화통보는 송 철종 정화연간(1111~1117년)에 주조된 동전인데, 한국의 경매사이트에서는 약 10,000원에 동전을 팔고 있는 걸 보니 내가 산 동전이 진짜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1111년에 주조된 송나라때의 동전, 예상치 못했던 항주여행의 수확이다.



Posted by 오래된未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