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채원배, 노신, 주은래가 태어난 곳이
불과 2~3km 반경안에 있다는 건 지나친 우연일까?

북경대학 교정에서 채원배의 동상을 봤었는데, 상해교통대학에도 원배로라는 길이 있는 걸 보고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길래 이런 영예를 누리고 있는 지 궁금해 하다가
마침 샤오싱에 채원배 옛집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그 곳으로 향했다.

전시관에 있는 자료들을 보고서야 십 몇년 전 중국 현대문학사 과목에서 들었던 채원배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났다. 채원배는 1916년부터 북경대학교 교장을 지내면서 능력우선주의로 인재를 채용하여 사상의 백화쟁명을 이루어냈다. 이 당시 노신도 북경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다.


처음엔 조금 이상하지만, 보면 볼수록 의미있게 느껴지는 북경대학 휘장
노신이 디자인했다고 적혀 있다.


1919년 5.4운동 후 잡혀간 학생들을 석방하기 위해 정부당국과 교섭하고 있는 채원배
그러고보면 북경대학, 고려대학 모두 각 국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대학들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 떠오른다.
샤오싱은 중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노신, 채원배를 배출하는 행운을 누린 곳으로 나에게 기억될 듯 싶다.

Posted by 오래된未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