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신공원(이전의 홍구공원)에 있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갔다왔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는 길도 만만찮지만, 이 곳은 더 찾기가 어려운데 8호선 홍구축구장역에 내린 후
바로 옆에 위치한 노신공원으로 가서 공원중간쯤에 위치한 윤봉길의사기념관을
찾아야합니다.

공원입구에는 윤봉길의사 기념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어
찾기가 어려운데,
입구의 약도 및 공원 중간중간의 팻말을 보고 매원(梅園)으로 가면 됩니다.
매원안에 윤봉길의사 기념관이 위치해있으며 입장료는 15원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후 당시 국민당의 장개석 총통이 "중국의 백만 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면서
감탄했고 이 일을 계기로 중국에 있던 김구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의 인정을 받음과 동시에 많은 지원을 받게 됩니다.

찾기 힘든 장소인데도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더군요...

기념관 1층에
있는 윤봉길의사의 흉상입니다.
원래 사진촬영 금지라는 안내판이 있긴 한데, 안내원은 밖의 그늘진 곳에서 다른 매점 직원과 함께 "담소"중이라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윤봉길의사가 직접 저술하여 야학교재로 사용한 농민독본입니다.
윤봉길의사는 처음에는 농민계몽운동에 종사하다가 일본제국주의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농촌문제역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라는 글을 남기고 고국을 떠나 대련, 청도를 거쳐 1931년 상해에 도착했고
이때 윤봉길의사의 나이는
24살이었습니다.
1932년 4월29일 11시40분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생일경축식 및 상해사변 전승기념식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저승길로 보내고 일본군 수뇌부 여러명에게
중상을 입힙니다.


사진모임에서 임시정부청사 가기전에, 이전부터 벼르고 있던 윤봉길의사 기념관부터 찾아가봤는데,
임정청사보다 더 기억에 남는 곳이 된 것 같습니다.









